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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로는 예수님의 사역에 있어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 장소일 뿐 아니라, 교회 초기부터 하나님의 나라가 유대인과 이방인을 아우르는 보편적 공동체임을 보여주는 중요한 단초를 제공하는 도시입니다.

예수님 시대의 두로는 신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복음은 단지 유대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믿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임을 드러냅니다. 두로는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의 사역이 지리적·문화적 경계를 넘는 결정적인 지점을 보여주는 도시인 셈입니다.

마태복음 15장에 두로 출신의 여인이 예수님께 나아온 사건은 단순한 치유 기적 그 이상을 보여줍니다. 당시 유대 사회는 이방인과의 교제를 꺼리고 율법적으로도 경계가 분명했지만, 이 여인은 예수님께 나아와 겸손히 도움을 구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처음엔 "자녀의 떡을 개들에게 던지는 것이 옳지 않다"라고 말씀하시며 유대인 우선의 원칙을 언급하셨지만, 여인은 지혜롭고 겸손하게 대답합니다. "주여, 옳소이다 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마태복음 15:27). 이 말에 예수님은 감탄하시며 그녀의 믿음을 칭찬하시고, 그의 딸을 고쳐 주십니다.

더 나아가, 두로는 이후 사도행전에서도 간간이 언급됩니다. 사도 바울이 전도 여행 중 이 도시를 지나가며 두로의 제자들과 교제했던 장면(사도행전 21:3-6)은, 이미 두로 지역에 기독교 공동체가 존재하고 있었음을 시사합니다. 이는 예수님의 복음 사역이 실질적으로 이방 세계로 확장되어 나간 증거로 볼 수 있습니다.

⚔ 두로의 자랑과 몰락의 원인 – 사라진 영광을 향한 하나님의 슬픔

에스겔 27장은 앞서 26장에서 예고된 두로의 멸망을 보다 시적으로, 그리고 감성적으로 묘사한 장입니다. 이 장은 일종의 애가(哀歌)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는 단순한 예언의 전달을 넘어서 하나님께서 두로의 멸망을 슬퍼하신다는 정서적 표현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언제나 무정한 파괴가 아니라, 사랑에서 비롯된 고통스러운 선택임을 보여주는 본문입니다.

🚢 두로의 자랑, 무역의 중심지로서의 위상

에스겔은 두로를 “바다 가운데 거주하며 여러 해역과 교역한 자”라고 표현하며, 마치 한 척의 화려한 선박에 비유합니다.

📖 에스겔 27장 4-9절

"네 땅이 바다 가운데에 있음이여 너를 지은 자가 네 아름다움을 온전하게 하였도다 5 스닐의 잣나무로 네 판자를 만들었음이여 너를 위하여 레바논의 백향목을 가져다 돛대를 만들었도다 6 바산의 상수리나무로 네 노를 만들었음이여 깃딤 섬 황양목에 상아로 꾸며 갑판을 만들었도다 7 애굽의 수놓은 가는 베로 돛을 만들어 깃발을 삼았음이여 엘리사 섬의 청색 자색 베로 차일을 만들었도다 8 시돈과 아르왓 주민들이 네 사공이 되었음이여 두로야 네 가운데에 있는 지혜자들이 네 선장이 되었도다 9 그발의 노인들과 지혜자들이 네 가운데에서 배의 틈을 막는 자가 되었음이여 바다의 모든 배와 그 사공들은 네 가운데에서 무역하였도다"

두로는 당시 지중해 연안의 국가들과 활발하게 교역하였고, 온갖 귀한 물품들이 이 도시에 모였습니다. 금, 은, 보석, 고운 베, 자주색 옷, 백향목, 흑단, 향료 등, 이 모든 것이 두로의 부와 위엄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물질적 번영이 교만을 낳았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독립적인 태도를 심화시켰습니다. 이 장은 두로가 얼마나 아름다웠고 정교하게 세워졌는지를 묘사함과 동시에, 그러한 자랑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 무너질 수 있는지를 동시에 보여줍니다.

🌊 “너의 파선은 깊은 바다 가운데 있었다”,  예고된 몰락

27장 26절부터 본격적인 심판의 장면이 그려집니다. 바다 위에 떠 있는 선박처럼 번성하던 두로가 갑작스러운 폭풍에 의해 파선되는 비유가 등장합니다. 선장이 항해를 잘못해서도 아니고, 선체에 문제가 있어서도 아닙니다. 이는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일어난 파괴이며, 사람의 지혜나 기술로 막을 수 없는 운명적 결과입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두로와 교역하던 나라들과 상인들, 해양에서 일하던 자들이 모두 이 멸망을 보고 슬퍼하고, 옷을 찢고, 재를 뒤집어쓰며 애통해 한다는 표현입니다(겔 27:29~32). 이는 단지 도시의 몰락이 아니라, 온 세계 경제 질서의 충격이기도 하다는 상징입니다. 두로는 고립된 존재가 아니라 세계와 긴밀하게 연결된 도시였기 때문입니다.

📉 두로의 교만은 오늘날에도 반복된다

오늘날 세계 경제를 이끄는 도시들 — 뉴욕, 도쿄, 런던, 두바이와 같은 곳들도 두로와 마찬가지로 거대한 부와 연결망을 자랑합니다. 그러나 만약 그 기반이 하나님 없이 세워진다면, 그것은 영원할 수 없으며, 언젠가는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을 에스겔은 경고합니다. 우리는 펜데믹, 전쟁, 금융위기와 같은 전 세계적인 충격을 통해 이러한 인간 중심의 시스템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 경험했습니다. 두로의 몰락은 과거의 사건이지만,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매우 현실적인 경고입니다.

📌두로의 애가는 하나님의 부르심이다

에스겔 27장은 단순한 애가가 아닙니다. 그것은 회개를 촉구하는 하나님의 절절한 호소이자, 기회를 주시는 경고의 메시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단지 두로의 교만을 벌하시기 위해 심판하신 것이 아니라, 온 열방이 그분이 하나님 되심을 알기를 원하셨습니다. 우리 역시 지금 이 시대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잊고 살아가는 영역은 없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부와 명예, 시스템과 제도, 인간의 지혜 위에 하나님의 뜻이 중심이 되어야 우리는 무너지지 않고 견고히 설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강력한 영적 메시지를 전하는, 이 장은 두로가 얼마나 찬란하고 위대한 상업 도시였는지를 묘사하며 시작합니다. 하지만 그 영광의 절정에서 하나님 앞에 교만하고 탐욕에 물든 모습으로 인해 결국 무너지게 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겸손, 그리고 참된 의존이야말로 도시든 개인이든 무너지지 않는 기초임을 보여주는 강력한 선포의 메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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